홍영표 변호사님 글(퍼온글)
긴 글입니다. 기존에 써둔 글들을 수십번 고쳤네요.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널리 퍼지게 공유 부탁드립니다.
<물적분할 : 자본조달인가, 자본탈취인가>
자회사 상장이 왜 문제라는 말인가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신사업을 추진하거나 시장을 확장하려면 외부 자금이 필요하고, 그 자금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상장이 활용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자회사 상장의 목적이 자본조달에 있는 것처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기존 주주의 권리 희생을 전제로 작동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물적분할’을 거친 자회사 상장은, 회계적으로는 문제 없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모회사 주주의 경제적 권리가 침해되는 구조로 작동합니다. 자회사가 상장한 후 신주를 외부에 발행하게 되면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이 희석되고, 자회사의 가치 상승은 더 이상 온전히 모회사 주주의 몫이 아니게 됩니다.
그 결과, 자회사의 상장과 동시에 모회사 주가가 하락하거나 정체되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자회사 기업가치는 시장에서 인정받고 상승하지만, 그 모회사의 가치는 도리어 할인을 적용받고, 주가는 오히려 하방 압력을 받는 기형적 반응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구조는 동일할지언정 권리는 불평등
기업이 하나의 조직 안에서 여러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그 사업들을 따로 떼어내 운영하고 싶어집니다. 시장 환경이 다르고, 투자 유치 방식이 다르고, 성장 속도나 전략도 다를 때 그렇습니다. 예컨대 전자제품을 만들던 회사가 배터리 사업을 별도로 키우고 싶어지면, 그 사업만 따로 뽑아 독립된 회사처럼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바로 ‘분할’입니다. 하나의 회사가 두 개의 회사로 나뉘는 구조입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회사 쪼개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적 구조와 지배구조, 주주의 권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분할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적분할이고, 다른 하나는 물적분할입니다. 두 방식 모두 회사의 일부를 떼어내 새로운 회사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회사를 누가 소유하게 되는가는 전혀 다릅니다. 이 지점이 분할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인적분할은 회사를 둘로 나누되, 주주가 두 회사를 모두 함께 갖는 방식입니다. 기존 주주는 모회사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자회사 주식도 같은 비율로 배정받습니다. 그래서 분할이 일어나도 주주의 손에 있는 자산은 본질적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자회사가 성장하면, 그 수익과 주가 상승은 자회사 주식을 가진 주주에게 그대로 돌아가고, 그 주주는 원래의 모회사 주주이기도 합니다. 즉, 기업이 나뉘었을 뿐 이익의 귀속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반면 물적분할은 자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모두 들고 있는 구조입니다. 자회사가 따로 상장되더라도, 기존 주주는 그 자회사 주식을 받지 않습니다. 상장 과정에서 외부 투자자가 신주를 인수하게 되면,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은 줄어들고, 자회사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새 주주들과 나눠야 합니다. 그 결과 자회사 가치가 올라가도, 그 이익은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두 방식 모두 기업을 나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구조입니다. 하나는 자산이 분산될 뿐 권리는 유지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과 이익의 연결 고리가 끊기는 방식입니다.
숫자 뒤에 은닉한 지배력 강화
공모가격이 높게 책정될수록 기업가치가 올라가지만, 그 상승분은 자회사에 귀속되며, 모회사 주주는 단 한 주의 권리도 갖지 못합니다. 모회사의 가치에는 반영되지 않고, 자회사의 수익은 외부 주주와 지배주주에게 나뉘어 돌아갑니다.
게다가 자회사가 상장되면 지배구조가 이원화되면서 내부거래 조정, 수익 이전, 사업구조 재편 등 지배주주가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적 옵션이 생깁니다. 이러한 옵션들은 시장의 감시망을 벗어나 의사결정의 유연성과 이익의 내부 이동 통로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은 단순한 성장을 넘어, 경영권 보호, 이익 편중, 구조 설계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성장'이라는 명분, 그 뒤의 악의
물적분할은 단순한 자본조달 수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자회사가 상장되면 가장 먼저 주목받는 것은 공모가격입니다. 기업은 자회사 가치에 미래의 성장 기대를 반영해 공모가를 높게 설정하려 합니다. 공모가는 높을수록 회사는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고, 기존 주주가 아닌 새로 유입되는 외부 투자자들이 이 고평가된 가격에 주식을 사게 됩니다.
이때 공모가에 붙은 프리미엄은 자회사에 귀속됩니다. 자회사에 현금이 들어오고, 자회사 주식을 보유한 이들이 그 가치 상승의 수혜자가 됩니다. 그런데 자회사 주식은 모회사가 들고 있고, 모회사 주식만 가진 기존 주주는 자회사 주식에 대해 아무 권리도 없습니다. 자회사가 잘 나갈수록 모회사 주주가 아닌 자회사 주주, 그리고 그 자회사를 통제하는 지배주주만이 실익을 챙기게 됩니다. 자회사 가치가 두 배가 되어도, 모회사 주가는 오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자회사가 상장되면 지배구조는 분화됩니다. 자회사는 따로 이사회와 경영진을 구성하게 되고, 경영권은 여전히 모회사에 있으나, 실제 사업의 판단과 수익 흐름은 자회사 안에서 결정됩니다. 이 상황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여러 전략적 선택지를 만들어냅니다. 자회사와 모회사 간의 내부거래를 재조정하거나, 특정 사업 부문을 자회사로 이전해 자산 구조를 개편하고, 수익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또한, 자회사가 별도로 상장되어 있다는 점은 외부의 감시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만듭니다.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에 대해 직접 개입할 수 없고, 자회사 주주 역시 모회사의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서 지배주주는 두 회사의 구조를 모두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사회 구성, 공시 전략, 거래 조건까지 사실상 하나의 그룹 안에서 정교하게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은 단순한 성장을 위한 자금 유치 수단이 아닙니다. 잘 설계된 이 구조는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고, 자회사 상장을 통해 생긴 가치 상승의 열매를 소수에게 집중시키며, 기업 내부의 지배구조와 거래 흐름을 유리하게 재편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성장을 앞세운 설명 뒤에, 구조의 설계가 먼저 있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례가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왜 이런가
한국에서는 물적분할이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수순처럼 되어 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주요 시장에서는 인적분할이 기본입니다. 자회사를 상장하려면 먼저 기존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나눠주고, 그 주주가 자회사 성장의 과실을 직접 가져가는 구조가 원칙입니다. 주주는 회사를 오래 지켜본 만큼, 자회사에서도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자회사가 생겨도, 기존 주주는 그 주식에 대해 아무 권리도 없습니다. 자회사를 시장에 상장하더라도 주총을 열 필요도 없고, 주주에게 묻지도 않습니다. 이사회가 결의하면 끝입니다. 자회사 신주가 외부에 팔려도, 기존 주주가 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정청구권도 없고, 상장에 반대할 권한도 없습니다.
그래서 물적분할은 언제든 가능하고, 거의 아무 저항도 받지 않습니다. 경영진은 사업부를 떼어 자회사를 만들고, 지배주주는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외부 자본만 새로 끌어옵니다. 비용은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그 사이 주주는 자신이 가진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권리는 빠져나가고, 손해는 남겨집니다.
이런 구조라면, 최소한 시장이 견제에 나서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은 허용만 하고 보호는 하지 않으며, 규제는 침묵하고, 기관투자자는 대부분 찬성표를 던집니다. 국민연금조차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을 뿐, 실질적으로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민간 기관투자자들도 대기업의 경영권 문제에 개입하려 하지 않습니다. 시장의 구조에 맞서는 것이 곧 불이익이라는 무형의 압력이 이미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